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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사] 임대차법에 무너진 전월세 시장... 곳곳서 "나도 홍남기" 발동동

by Opus One 2020.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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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70)는 전세 난민이 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사연이 남 일 같지 않다. 서울 송파구 신축 아파트에 전세 사는 그는 내년 3월이면 계약기간이 만료되는데, 집주인이 최근 보증금을 50% 넘게 올려달라고 통보해 왔다.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집주인이 서울에 사는 자녀를 들이겠다고 해서 꼼짝없이 집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

그는 인근에 다른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입주할 수도 없다. 재건축 아파트여서 철거 후 주민 이주까지 완료됐지만 인허가가 늦어지면서 입주까지는 최소 4년을 기다려야 한다. A 씨는 “집주인 외아들이 해외에 산다고 들었는데 탐정이라도 써서 아들이 들어와 살지 알아보고 싶은 심정”이라며 “임대차 계약을 앞둔 사람이라면 홍 부총리 같은 문제를 겪는 사람이 나를 포함해 전국에 수두룩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 지 두 달 반에 접어든 가운데 시행 초기의 혼란이 점차 안정될 것이라던 정부 주장은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가을 이사철을 맞아 전월세 시장은 그야말로 ‘아노미’ 상태다. 임대차법에 묶여서 살던 집에서 퇴거하고 보유한 집도 팔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홍 부총리와 같은 사례가 곳곳에서 속출하면서 전월세 시장의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각자도생하려다 보니 곳곳에서 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전셋집에서 내쫓긴 세입자가 자신의 집에 살던 세입자를 내쫓으면서 여파가 도미노처럼 번지는 사례도 나온다.

 

서울 강동구에서 30년 가까이 된 아파트를 갖고 있는 B 씨는 2년 전 인근 신축 아파트로 전세를 구해 이사했다. 그런데 최근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집주인으로부터 집을 비워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나중에 아파트를 팔 때 양도소득세를 감면받으려면 실거주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는 같은 단지에서 전세를 구하려 했지만 매물 자체가 없다 보니 ‘부르는 게 값’이어서 포기했다. 결국 자신의 집에 사는 세입자를 내보내고 들어갈 생각이다.

 

임대차법 허점에 억울한 피해자도 적지 않다.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신모 씨(31)는 전세 계약 만료를 두 달 앞둔 지난달 초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했으나 거절당했다.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다.

그는 집주인에게 “실거주하겠다며 세입자를 내쫓아놓고 집을 팔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항의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직접 들어가 살려고 했는데 급하게 목돈이 들어갈 일이 생겨서 파는 것”이라며 “법대로 하라”고 맞섰다. 변호사와 상담해 봤지만 마땅한 대응책이 없었다. 현행 임대차법엔 ‘다른 사람에게 주택을 매도한 경우’도 계약갱신 거절 사유인지에 대한 해석이 불분명해서다.

 

전문가들은 전월세 시장의 극심한 혼란이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출과 세금 등 전방위적 규제가 실타래처럼 얽혀서 기존에 전세 매물이 줄고 있던 상황에서 7월 말 임대차법까지 시행된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재건축 아파트에는 2년 이상 실거주 의무를 둬서 집주인이 세입자를 내보내야 하고, 분양가 규제로 청약 열풍이 일면서 무주택자 자격을 유지한 청약 대기자들이 전세로 몰리는 식이다. 15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0월 둘째 주(12일 기준)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0.14%)보다 0.15% 오르며 상승 폭을 키웠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68주, 수도권은 62주 연속으로 올랐다.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서울 0.01%, 수도권 0.07%)보다는 오름 폭이 크다.

 

홍 부총리는 14일 “전세 가격 상승 요인에 대해 관계 부처 간 면밀히 점검, 논의하겠다”며 추가 전월세 대책을 검토 중임을 시사했지만 당장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마땅치 않다는 의견이 많다.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게 최우선이지만 이미 8·4부동산대책을 내놓아 추가 주택 공급을 낼 여력은 없는데, 강력한 ‘한 방’인 전월세 표준임대료는 거센 저항을 불러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정부 인식 역시 여전히 수요자들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기존 임차인의 주거 안정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홍 부총리)거나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슬기롭게 마음을 모으면 몇 개월 뒤 전세 가격이 안정을 찾을 것”(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이 대표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 정책은 수요와 공급이 균형적일 때 제대로 먹혀 들어가는데, 지금처럼 공급은 없고 수요는 늘어난 상황에선 결코 규제만으로 전세대란을 잡을 수 없다”며 “경제 수장이 정책 부작용을 온몸으로 체감한 만큼 이제라도 시장 정상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www.donga.com/news/article/all/20201016/103448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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