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20년은 SF(공상과학)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인터넷의 뒤를 잇는 가상현실 공간인 '메타버스'(Metaverse) 시대가 오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창립자 겸 CEO(최고경영자)가 지난 10월 자사 개발자 행사 'GTC(GPU 기술 컨퍼런스)' 기조연설에서 한 얘기다. 젠슨 황 CEO는 "미래의 메타버스는 현실과 아주 비슷할 것이고, SF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처럼 인간 아바타와 AI(인공지능)가 그 안에서 같이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테크 그루와 기술기업들이 최근 주목하는 공통 키워드가 바로 '메타버스'와 '디지털 트윈'이다. VR(가상현실), AR(증강현실) 등 XR(가상융합) 기술을 통해 현실과 가상의 공존을 이뤄냄으로써 현실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겠다는 것이다. XR이 현실화되면 또 하나의 활동공간이 생겨나는 만큼 과거에 없던 경험과 경제적 가치가 만들어질 수 있다. 컨설팅기업 PWC는 지난해 11월, XR 산업이 2025년 세계적으로 약 520조원(4764억 달러) 규모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창출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 "새로 열리는 경험·공간…XR 주도권 전쟁 시작됐다"= 글로벌 기술기업들은 새로 열리는 공간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투자와 경쟁에 돌입했다. 젠슨 황 CEO는 10월 행사에서 시뮬레이션·협업을 위한 가상공간 상의 플랫폼인 '옴니버스'를 발표했다. 가상공간이면서 실제 물리법칙을 따르도록 설계해 산업현장부터 일상까지 인간의 활동을 확장하게 해 준다는 설명이다.
구글·애플·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들은 범용기술로서 XR의 잠재력과 파급효과에 주목하고, 과거 컴퓨팅과 인터넷, 스마트폰 영역에 버금갈 만한 파급력을 기대하며 경쟁력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애플은 AR 지원 라이다 센서를 탑재한 '아이폰12 프로'를 지난 10월 출시한 데 이어 2022년 AR 글래스를 내놓을 예정이다. 제너럴일렉트릭은 AR 기술을 활용한 정비가이드 서비스를 통해 유지보수 효율성을 8~12%, 작업 생산성을 34% 높이는 효과를 얻었다. 영국이 XR 기반 '이머시브 이코노미(Immersive Economy)'를 주도하기 위해 2018년부터 작년까지 5800만 파운드를 투자하는 등 주요 국가의 정부들도 투자에 나서고 있다.
◇정부, 예산·제도·인력 투입해 XR경제 키운다=한국 정부도 XR을 미래 먹거리와 일자리로 키우기 위한 발전전략을 내놓고 본격적인 투자와 생태계 조성에 나선다. 정부는 지난 10일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제119회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열고 범정부 차원의 가상융합경제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그동안 콘텐츠 중심으로 해온 XR 성장전략을 경제산업 전 영역으로 확장하는 게 골자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비대면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XR이 일상과 산업현장에 파고들고 있는 가운데, 이를 XR경제 성장의 기회로 잡겠다는 것이다.
VR·AR을 포괄하는 XR 기술을 제조·의료 등 산업현장에 결합하고, XR 연관 디바이스·데이터·네트워크 인프라에 집중 투자해 2025년까지 30조원 규모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만들어내는 게 정부의 목표다. 또한 민간의 참여와 투자를 견인할 XR펀드를 조성하고, 관련법 제정과 규제 개선, 전문 기업 및 인력양성을 통해 산업의 기초체력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6대 산업에 XR 결합, '플래그십 프로젝트' 추진=내년부터 관련 투자가 본격화된다. 우선 내년에 약 450억원을 투입해 'XR 플래그십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제조·의료·건설·교육·유통·국방 등 6대 산업에 XR을 적용해 과거에 없던 가치를 만들어 낸다는 계획이다. 화학·자동차·조선·해양 제조현장에 디지털 트윈 기반의 가상공장을 구축하고, 의료현장에도 XR 기반 진단예측·훈련·수술 환경을 도입한다. 또한 건설현장에는 XR 기반 가상도시 설계와 노후 시설물 정비체계를 구현하고, 국방영역에는 전통적 훈련체계를 초실감 가상훈련 체계로 전환한다.
디바이스·데이터·네트워크 등 연관 기술과 시장 성장효과를 키우기 위한 기술개발, 인프라 투자에도 나선다. 규제자유특구 제도를 활용해 XR 신기술 검증이 가능한 지역거점을 확보하고, 디스플레이 및 반도체 산단에 XR 관련 디바이스 투자를 촉진할 센터를 운영한다. 정부는 2025년까지 XR기술 활용률을 20%로 높이고, XR 전문기업 150개 육성, XR 특화지구를 10곳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비대면을 넘어 'X택트' 시대로=XR경제를 통해 VR·AR, 디지털 트윈 등을 이용해 일상생활과 산업을 가상세계로 확장하는 변화가 이뤄지면, 산업 전반에서 광범위한 파생효과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이를 기술과 서비스로 뒷받침하는 과정에서 컴퓨팅 자원부터 디바이스·네트워크·데이터·콘텐츠·서비스 등 폭넓은 연관 산업의 투자 및 성장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개인은 PC와 모바일을 뛰어넘은 새로운 활동·경험공감을 부여받고, 기업은 XR을 비용절감과 생산성 혁신, 비대면 업무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국가 차원에서는 산업 전반의 디지털화, 사회 소통 강화, 지역균형 발전 등 과거 물리적 세계의 한계를 뛰어넘음으로써 얻는 부대효과가 예상된다. 특히 코로나19를 비롯한 비상상황에도 훨씬 더 생생하고 피부에 와 닿는 비대면 소통과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돼 교육, 유통, 의료 등 생활 필수영역에서 '초 언택트 서비스'들이 현실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XR 기반 디지털전환이 빠른 속도로 진행될 전망"이라며 "이번 전략 추진을 통해 XR을 활용한 경제사회 전반의 부가가치 창출과 디지털 뉴딜의 성공적 이행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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